2023.11.22
낯선 이

https://youtu.be/Ip8ylcq8Xpo?si=1wT3whXPMrt98sc1

 

 

 

 

 

 어느날 잠에서 깨어난 기상호는 자신의 잇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낯선>

 

 

 

 

 

 급하게 사 온 진통제의 효과는 더럽게 미미했다. 이딴 걸 약이라고 파는 이 세상은 문제가 많다. 하나만 먹어서 그런가 싶어 하나를 더 먹었지만 통증은 여전하다. 두통, 치통, 생리통 중에 치통에만 효과가 안 드는 건가 설마? 진짜 그런 거면 전국 약사 협회든 페이스업 협회든 어딘가에는 신고를 하겠다고 생각하며 기상호는 다시 약을 하나 더 삼켰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아마 이걸 삼켜도 고통은 똑같을 거라고. 경험하지 않아도 안다. 인간에겐 직감이 있다.

 

 

 

 성준수를 처음 봤을 때도 직감했다. …했나? 했을 거다. 이 햄이랑은 가까워지기 더럽게 힘들 거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준수는 기상호 인생에 처음 경험해보는 유형의 사람이었으니까. 암만 농구가 실내 운동이라지만 유독 해를 못 본 것처럼 허여멀건한 피부와 그 피부에 어울리는 지독하게 잘생긴 얼굴은 농구 선수보다는 곧 데뷔할 아이돌 연습생 같았다. 성격은 또 얼마나 까칠한지. 나름 노력해서 친절하게 구는 게 보였으나 입안에서 삼켜지는 욕과 종종 찌푸려지는 표정으로 어느 정도 까칠한 성격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서울말을 썼다. 살면서 그렇게 잔잔한 말투를 쓰는 사람은 현실에서 처음 봤다. 억양 없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문장들은 성준수를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저런 말 쓰는 사람은 티비에서만 봤는데…. 내용은 뾰족뾰족하나 이상하게 간질간질했다. 꼭 보송보송한 솜으로 만든 못 같았다.

 

 그런 호기심과 감상과는 별개로 기상호는 성준수가 어려웠다. 처음 들었던 생각처럼 쉬이 친해지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전학 온 지 일 년이나 되었다고 들었는데도 친구의 이름 하나 들어본 적 없는 걸로 봐서는 딱히 사람을 좋아하는 편도 아닌 것 같았다. 초반에만 잠깐 친절하던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사라지고 예민한 얼굴을 드러냈다. 그 성격을 잠깐이나마 숨긴 게 더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대단하다고 해야겠다. 기상호는 잠깐 성준수의 마음결이 비단까지는 아니어도 순면은 된다고 착각했으니까. 실상은 사포였지만. 놀라운 건 그 사포 같은 마음이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는 거다. 성준수가 어울리지 않게 착하게 굴 때보다 제 성격대로 굴었을 때 마음이 더 편했다고 말하면 성준수는 뭐라고 반응하려나. 이 새끼가 좋게 대해줘도 지랄이라고 까칠하게 대답할지도.

 

 기상호는 성준수가 싫지 않았다. 정말로, 전혀, 요만큼도. 툭하면 말로 얻어맞고, 실력을 폄하 당하고, 고래 싸움에 등이 터져도 말이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마음이 그랬다. 가끔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긴 했는데 싫은 건 아니었다. 얼굴… 때문인가? 근데 저 정도 얼굴이면 국보로 지정하는 게 맞을지도? 성준수에게 미치도록 까여도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면 상했던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나 얼빠 맞네. 딱히 사람의 외모에 관심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건 대단한 미인을 본 적이 없어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 이리저리 빨빨 거리며 발 뻗기 좋아하는 기상호가 성준수에게 쉬이 다가가지 못한 이유에는 분명 얼굴 탓도 있을 거다.

 

 어쩌면 동경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선망했을까? 이 말들에 과거형을 써도 되는 걸까? 기상호는 여전히 성준수를 동경하고 선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성준수는 진짜 존나 멋있으니까. 하다못해 널을 뛰는 그 슛 감마저 주인공에게 부여되는 일종의 페널티 같았다. 주인공…. 응, 맞아. 성준수는 주인공 같았다. 어떤 이야기의 주연 같았다. 만약 기상호의 인생이 영화라면 성준수는 그 영화의 주연이고, 기상호는 잘해봐야 명품 조연쯤? 성준수의 영화라면 엑스트라 정도?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크레딧 속에서 농구부원 1로 출연하는 게 기상호의 위치 아닐까. 아닌가? 그래도 우리가 엄청난 스토리 끝에 우승까지 했는데 기상호 역의 기상호 정도는 욕심내도 되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성준수의 인생에 기상호가 아주 약간의 분량이라도 차지하고 싶었다. 왜냐면 성준수는 기상호 인생에 이미 너무나도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중이니까.

 

 마지막에 패스한 공을 받아 그대로 림에 던지는 순간, 기상호의 세상은 한 번 무너졌다가 재건되었다. 햄아, 그렇게까지 무겁지는 않다면서요. 햄은 존나 구라쟁이예요. 졸라 무겁잖아요…. 공의 무게로 무너진 기상호의 세상. 그 공을 넘긴 건 그 누구도 아닌 성준수였다. 그러나 아무리 공이 무거워도 일단 던져야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성준수다. 미련한 걸로는 순위권 안에 들 인간에게 배워서 기상호도 그렇게 했다. 손에 잡히는 둥근 것이 공이 아니라 기상호가 발 붙이고 사는 행성처럼 느껴졌다. 이 동그라미가 저 림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대로 멸망하는 것이다. 온갖 상상을 했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미래를 보고 온 히어로 영화의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마법사는 결국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미래를 보았지. 들고 있을 때까지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겁던 공은 제법 가볍게 던져졌다. 지구가 궤도를 돌고, 림을 통과하는 소리는 기상호의 별이 다시 태어났다는 걸 알리는 소리였다. 다시 태어난 별 위에서, 중력을 처음으로 느낀 건 기상호가 누군가와 충돌해 그대로 넘어진 때였다. 범인은 약간 붉어졌으나 여전히 지나치게 희여멀건한 얼굴을 한…. 무게를 느끼며 기상호는 엉엉 울었다. 세상에 나온 아이가 첫울음을 하는 것처럼 울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버스엔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대회가 끝나고 트로피를 들었을 때야 실감이 났는지 하나둘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더니 그게 순식간에 전염이 돼서 결국 모두가 울고 난 뒤에야 끝이 났다. 다 큰 사내놈들이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운다고 말하는 감독님의 눈도 팅팅 부어있었다. 나름 못난 인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같이 불어 터진 떡 같아서 얼굴을 보면 웃음이 나왔다. 그 뒤로 서로 놀리느라 한바탕 또 진을 뺐더니 버스를 타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기절했다. 그 사이에서 기상호는 눈을 뜨고 있었다. 피곤해 죽겠고 눈이 계속 감기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이 고장 났거나 머리가 고장 났거나 둘 중 하나는 분명했다. 도로를 달리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공간에서 기상호는 반쯤 감은 눈으로 머릿 속에서 결승전을 계속 재생했다. 영상을 멈춘 건 성준수였다.

 

 "안 자냐."

 

 기상호는 오른쪽 창가에 붙어 앉았고, 성준수는 왼쪽 창가에 앉아 있었다. 빈자리 두 개를 사이에 두고 성준수가 말을 걸었다. 잠이 든 사람들을 배려해 작은 목소리였다. 운 탓인지 약간은 잠겨있었다.

 

 "잠이 안 와요."

 "그러냐…."

 

 딱히 궁금했던 건 아니었는지 대답이 무심했다.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는데 바로 옆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자리를 옮긴 성준수가 안전벨트를 다시 매는 중이었다.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왜 그러냐는 듯 눈을 맞춰왔다.

 

 "햄은 안 주무세요?"

 "나도 잠 안 와."

 "와, 방금 되게 햄 부산 사람 같았어요."

 "일 년 넘게 살았으니까."

 

 여상한 대꾸에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얼마 전 원중고 사람들이랑 마주쳤을 때는 사투리 쓴다는 말에 그렇게 성질을 내더니 지금은 또 아무렇지도 않다는 태도다. 뭐 이래저래 그 때랑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으니 그렇겠지. 어쩌면 성준수는 사포가 아니라 순면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순면은 좀 너무 순화했고, 린넨 정도? 그새 딴 생각에 빠진 기상호가 웃긴지 작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원래는 쌍욕이 날아와야 하는데 웃음이라니. 도리어 좀 무서운데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좋았다.

 "손등은 어때요?"

 "아무렇지도 않아."

 "아깐 팅팅 부었던데요."

 "오바는. 농구 하다 보면 이 정도 다치는 거야 뭐…."

 "햄, 되게 남자네요."

 

 대화는 생각보다 원활했다. 성준수의 얼굴엔 피곤이 묻어있었으나 평소보다 훨씬 표정이 좋았다.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해서 기상호는 시선을 깔았다. 정면으로 보기엔 버거운 얼굴이었다. 눈을 깐 것 뿐인데 졸음 때문에 눈이 감기는 거라 생각했는지 대화가 멈췄다. 다시 말을 걸까 싶다가도 경기가 끝난 순간부터 성준수만 보면 기분이 이상했던지라 선뜻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꼭 위 안에서 손이 꾸물거리는 기분이었다. 뭔가 울렁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갈 토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상했다. 눈을 볼 때는 더 심해졌다. 온몸이 간지러워서 벅벅 긁고 싶은 느낌마저 들었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가. 괜히 땀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어쩐지 손을 가만히 두기가 어려워 주먹을 쥐었다.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 될 것 같아 눈을 감고 있으면 시선이 느껴졌다. 으…, 토할 것 같아. 명치를 쥐어 뜯고 싶은 충동을 참는데 성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방이라도 공기 중에 흩어질 것처럼 희미했다.

 

 "하여간 이상한 새끼…."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내 뭐가 이상하냐고 묻지 못한 이유는 기상호의 머리를 당겨 제 어깨에 기대게 한 성준수 때문이다. 딱딱하고 각진 어깨는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목덜미에 닿은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는지 작게 흠칫하는 행동에도 눈을 뜨지 못했다. 이상한 건 햄이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기상호는 성준수의 사소한 말 하나와 익숙하지 않은 행동 하나로 별안간 이상해져 버리고 만 것이다. 성준수가 아니었다면 기상호는 이상해지지 않았을 텐데. 절 이렇게 만든 성준수가 원망스러웠다. 성준수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옆에 앉지 않았다면, 어쩌면 기상호는 동경과 선망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었다.

 

 뭐, 이미 다 망한 이야기다.

 

 

 

 

<이>

 

 

 

 

 

 성준수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게 어젯밤인데 귀신같이 오늘 아침부터 잇몸이 아팠다. 진통제를 아무리 먹어도 효과가 없어 결국 양해를 구해 치과를 다녀왔다. 치과는 왜 매번 갈 때마다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지. 긴장에 땀이 찬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고 접수증을 적었다. 이름이 불리고, 엑스레이를 찍고, 의자에 누워 확인한 결과는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사랑을 깨닫는 나이에 나는 이라서 사랑니라고 했던가?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는 몰라도 기깔나게 잘 지었다. 정말로 첫사랑과 동시에 찾아오고 말았다. 너무 뻔해서 웃음도 안 나왔다. 첫사랑이나 사랑니나 참담하긴 매한가지다. 위, 아래, 왼쪽, 오른쪽. 야무지게도 네 개나 존재하는 데다가 아랫니들은 매복이란다. 이것도 끔찍한데 첫사랑인데다 짝사랑이기까지 한 염병할 사랑의 상대는 무려 성준수다. 이건 뭐… 나가 뒤지라는 말인지. 약국에서 타온 약을 삼키며 기상호는 크게 절망했다.

 

 이번에 나오기 시작한 이는 왼쪽 위에 위치한 치아다. 이제 막 잇몸을 뚫고 나오느라 고통이 느껴진 거고 좀 있으면 괜찮아 질 거라더니 그 말이 맞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아프던 이가 오늘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이따금 혀로 잇몸 끝을 누르면 낯선 이가 느껴져 기분이 이상했다. 그런데 사랑니 너 말이야. 감히 내 허락도 안 받고 네 멋대로 대가리를 들이밀면 안 되지. 내 치아인데 어째서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건지. 여기서 또 사랑니와 사랑의 공통점을 찾는다. 내 것인데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들. 원래도 많았는데 두 개나 한 번에 추가됐다. 인생 살아가는 게 왜 이리 가성비가 떨어지는 걸까. 기상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한없이 적다.

 

 막내가 사랑니가 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하나같이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주말에 발치 예약을 잡았다는 소식엔 벌써부터 뭘 먹을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내는 먹지도 못할 텐데 저 햄들이 미쳤나. 대회가 끝나고 잠깐 휴식을 취하는 시기에 찾아온 꿀잼 콘텐츠에 다들 미쳐서 기상호를 놀려댔다. 설마 하던 성준수마저 그랬다.

 

 "야. 아프냐?"

 "하나도 안 아픈데요?"

 "그래? 그럼 눌러봐도 돼?"

 "안 되는데요."

 "왜?"

 

 왜긴요? 제가 지금 이빨을 뺐으니까요? 

 

 

 

 기어코 밝은 주말 아침, 가기 싫은 걸 억지로 움직여 치과를 갔다. 가는 길이 꼭 죽으러 가는 길 같았다. 하필 잠들기 전에 사랑니 발치 영상을 봐서 더 그랬다. 내는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희차이는 와 집에도 안 가고 그런 걸 보여줘가지고…. 영상은 끔찍했다. 근데 그걸 오늘 해야 한다니. 심지어 오늘 하고도 앞으로 세 번은 더 해야 한다니. 세상이 원망스럽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았다. 어린이 친구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벌벌 떨던 기상호의 이름이 불리고, 의자에 앉자마자 손에 땀이 찼다. 어흐흐…. 울기 직전인 기상호의 한숨을 들은 간호사가 괜찮다며 진정시켰다. 윗니는 금방 빼요. 진짜요…? 네, 쑥 빠져요. 넵…. 난생처음 겪어보는 마취 주사는 상상보다 더 싫었다. 다은햄이랑 같이 올 걸. 옆에 누가 있으면 낫겠는데 혼자 참으려니 서럽기까지 했다. 놀림받기 싫어 혼자 온 건데 이렇게 겁이 날 줄은 몰랐다.

 

 "옆에 환자 분 사랑니 뽑으면 뽑으실 거예요."

 "네헤헵…."

 

 기다림은 고통이라고 누가 말했나. 그냥 고통이 아니다. 진짜 개쩌는 고통이었다. 기계 소리가 들릴 때마다 괜히 제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와, 토할 것 같다. 심장 고장 난 거 아이가.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도 들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걸 꾹 참는데 기계 소리가 멈췄다.

 

 "자, 이제 누울게요."

 "으아아…, 네……."

 

 초록색 천이 머리 위로 올라오고, 약 이십초가 지났다.

 

 "네, 끝났어요. 아팠어요?"

 "아이요."

 

 진짜로 안 아팠다. 뭔가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더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솜을 물었다. 금방 뽑는다고 했던 간호사 누님의 말이 맞았다. 마취 때문인지 이를 뺀 탓인지 볼이 땡땡했다. 솜을 물고 계산까지 끝내니 더 얼떨떨했다. 이 정도면 당장 내일 남은 세 개를 한 번에 뽑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사라진 건 숙소에 도착하고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마취가 풀린 탓에 이를 뽑은 곳이 서서히 아파지기 시작했다. 볼도 더 부어올라 얼굴이 한 쪽이 평소보다 더 동그랬다. 부기를 빼겠다고 얼음주머니를 문지르는데 성준수가 러닝을 마쳤는지 젖은 머리로 등장했고, 그 뒤에 기상호에게 말을 걸었다. 눌러봐도 되겠냐고.

 

 "누르면 아프니까요."

 "안 아프다매."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요."

 "그럼 안 누를 테니까 만져만 보면 안 되냐."

 "아니…, 예. 누르면 안 돼요."

 "어."

 

 뭐가 그렇게 궁금하다고 저러는지. 기상호가 지금 겪는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저러니 조금 얄밉기까지 하다. 근데 뭐 그렇게 궁금하다는데 한 번 볼 내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효, 먼저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다. 문지르던 얼음주머니를 내려놓으니 벽에 기대 앉은 기상호 옆에 성준수가 주저앉았다. 방금까지 달리고 온 사람인데 땀 냄새 하나 안 난다. 저 햄은 프로 농구 가면 포카리 광고 무조건 찍을 듯. 가까워진 거리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데 차가운 볼 위로 뜨거운 게 닿았다. 성준수의 손가락이다.

 

 그러고보면 성준수는 의외로 체온이 남들보다 아주 약간 더 높았다. 당장 냉동고에서 나왔어도 놀랍지 않을 쿨뷰티 미남 주제에 몸은 뜨거웠다. 가끔은 열이 있나 오해할 정도였다. 쌍용기 우승 때도 그랬다. 저를 누르는 몸이 무겁고, 동시에 지나치게 뜨끈뜨끈했다. 실제로 그날은 체온계로 확인하기까지 했다.

 

 "차갑다. 그리고 되게… 딴딴한데?"

 "부어서 그래요."

 "피는 멎었냐?"

 "아직 조금씩 나요."

 "그러냐…."

 

 잠깐 정적이 흘렀다. 어색한 동작으로 성준수의 손가락이 떨어졌다. 쌍용기 이후로 성준수와 둘만 있을 때마다 분위기가 이랬다. 전적으로 기상호 탓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감정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어색하게 굴곤 했다. 덩달아 성준수의 태도도 미묘해졌다. 몇 달 뒤면 성준수는 졸업할 거고, 그 뒤로는 멀어질 테니 같이 있는 이 잠깐의 시간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 되는데 그게 어렵다. 적막만 흐르는 사이에서 기상호가 어렵게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안 씻으세요?"

 "어? 어어…. 씻어야지."

 "옙…."

 

 하, 이 시대의 아무 말 머신 기상호의 이름이 무색하다. 만화 같은 거 보면 다들 엄청 뚝딱거리다가도 말은 대단하게 하던데 기상호는 그게 안 된다. 작게 절망하는데 성준수가 미묘하게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그, 야…. 나한테서 땀 냄새 나냐…?"

 "어…, 아뇨?"

 "그러냐…."

 

 다시 대화가 끊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준수가 몸을 일으켰다. 시선이 따라 움직이려는 걸 겨우 참았다. 아무래도 움직이는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 이상한 일이니까. 기상호는 제 마음을 아직 들키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영영 들키지 않고 싶었다. 성준수가 절 끔찍하게 생각하면 콱 접싯물에 코 박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기상호의 목표는 장수였다. 이왕이면 오래오래 살아서 꽃 노인이 될 성준수도 보고 싶었다. 와, 나 저 햄 진짜 개 좋아하네. 원래 평생이니 영원이니 이런 말들은 애니에서나 나올 줄 알았는데 사랑하다 보니 저런 말들을 함부로 막 말하게 됐다. 하지만 햄은 이런 내 맘 모르겠죠…. 화장실 문 닫히자마자 성준수의 손가락이 닿았던 볼을 괜히 더듬거렸다. 어딘가 근질근질했다. 아주 잠깐 머무른 온도에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농구 하는 중에는 이런 증상들이 덜했다. 아무래도 준수햄이랑 경기하는데 농구 더럽게 못하면 진짜 뒤질지도 몰라서인가. 이거 생존본능?

 

 

 윗니를 뽑아서인지 생각보다 고통은 빠르게 잠잠해졌다. 붓기도 금방 가라앉았다. 훈련하기 전, 잠깐 소독하러 다녀온 후에는 금방 괜찮아져서 보름 정도 지났을 때엔 사랑니를 뺐다는 사실 조차 깜빡할 정도였다. 그런 기상호가 재미 없었는지 김다은은 아쉬운 표정을 했다. 막내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일상 속 잠깐의 기쁨으로 만끽한 것이 괘씸하기만 하다. 성준수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정도 부어올랐던 볼을 한 번씩 쳐다보는 시선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저 햄은 만져보기까지 했으면서…. 다른 햄들이 만져보고 싶다고 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말이지. 기간 한정 기상호의 탱탱 볼을 유일하게 만져봐서 그런 걸까?

 

 발치의 영향으로 쉬엄쉬엄했던 훈련을 다시 따라가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오래 쉰 것도 아닌데 숨이 턱턱 막혔다. 그 사이 양이 더 많아지기도 했다. 다음 대회에도 저번과 같은 행운이 다시 찾아올 리가 없으니 배로 노력해야 했다. 안 그래도 부원이 없는 데다가 다 풀타임 출전을 했으니 버릇이나 사인 같은 것도 이미 다 간파당했을 거다. 그나마 경기를 하면서 기상호의 슛이 좀 쓸만해 졌다는 게 위안이었다. 그래서인지 기상호의 슛 연습 시간이 늘었다. 기상호를 봐주는 사람은 당연히 성준수였다.

 

 "야이씨, 집중 안 해?"

 "흐어, 저, 저 죽을 것 같은데요…."

 "죽을 각오로 해."

 

 아니, 진심으로 방금 요단강 관광하고 온 것 같은데….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참으며 공을 주웠다. 팀 내 슈터가 성준수니 당연히 성준수가 연습을 봐주겠지. 그 탓에 아주 잠깐 걱정했는데 다 괜한 걱정이었다. 훈련 중 발생하는 두근두근 이벤트? 그딴 게 존재할 리가 있나. 기상호는 하루에 한 번 씩 지옥문 입구를 구경하고 왔다. 심장이 너무 뛰는 건 성준수와 같이 있어서가 맞지만 사랑 같은 달콤한 감정 때문만은 아니다. 죽기 직전까지 하는 유산소와 학습된 공포 탓이다. 성준수는 악마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을 이렇게 굴릴 리가….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 마지막으로 슛을 쐈다. 위태롭지만 들어갔다. 으아, 이제 끝이다. 겨우 끝났다!

 

 "뭘 잘했다고 누워."

 "함만요…. 햄 저 진짜 죽어요. 저 죽으면 햄도 데려갈 거예요…."

 "뭐래…."

 

 기상호의 진심이 닿았는지 대답이 떨떠름했다. 죽으면 사인은 성준수다.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성준수때문에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죽을 듯. 그래도 제가 햄 사랑해서 순장까지는 부탁 안 하는 거예요. 이런 기상호의 끔찍하고 깜찍한 사랑을 꿈에도 모를 성준수가 바닥에 널브러진 기상호의 옆에 앉았다. 기상호의 가슴 위로 손을 올리는 게 죽는다는 말이 엄살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듯했다. 아, 지금 빨리 뛰는 건 힘들어서가 아닌데. 누워 있던 탓에 호흡이 생각보다 금방 진정됐다. 그래서 지금 뛰는 건 단순히 성준수랑 같이 있어서다.

 

 "야, 너 심장 너무 빨리 뛰는 거 아냐?"

 "어, 음…. 괜찮을 걸요?"

 "아니, 그래도 너무 빠른데?"

 

 진짜로 괜찮은데…. 성준수랑 있을 때는 원래 심장이 계속 빨리 뛰었다. 이렇게 뛰다가는 금방 늙겠다 싶을 정도로 그랬다. 빨리 나이 먹어서 준수햄이랑 동갑 되고 싶어서 그런가, 짐작했다. 사랑에 빠지면 뭐 하나는 고장 난다는데 그게 저는 심장이라고. 평소에도 햄이랑 있을 때는 항상 이렇게 뛴다고.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발생할 상황을 상상하는데 성준수의 표정이 지나치게 심각했다. 이 햄 진짜 나 병 걸린 줄 아는 거 아니야? 평소엔 대문자 T답게 냉정한 사람이 웬일로 상상력이 지나치다. 햄 이거 캐붕입니다.

 

 "저 진짜 괜찮은데요…."

 "야, 병원 검사 한 번 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

 "예?"

 이게 뭔 소리야. 갔다가 개망신 당할 일 있나. 선생님, 저 혹시 부정맥일까요? 아니요, 환자 분은 사랑에 빠진 겁니다. 이런 바보 같은 대화를 하고 쪽팔려 죽기는 진짜 죽어도 싫다. 벌떡 몸을 일으키니 가까워진 얼굴에 성준수가 뒤로 물러났다. 같이 훈련한 탓인지 볼이 묘하게 붉다.

 

 "햄, 저 진짜 병원 안 가도 되는데요."

 "너 심장 그렇게 빨리 뛰는 거 정상 아니야. 운동 하는 애가 그것도 몰라?"

 "하이고…. 그게 아니라요. 아, 저 진짜 괜찮다니까요. 요새 계속 이랬어요. 아마 햄 졸업할 즈음에는 괜찮아질걸요?"

 "뭐? 요새 계속 그랬다고? 언제부터. 그리고 나 졸업 하려면 아직 몇 달은 남았는데 병원을 안 간다는 게 말이 되냐? 별 이상한 고집부리지 말고 빨리 일어나. 감독님한테도 말씀 드려야 돼."

 "햄아, 제발 진정 좀요. 진짜 정상이라고요, 저."

 "네가 정상이라는 증거가 뭔데. 뭐 진단서라도 끊어왔어? 그럼 빨리 보여줘 봐. 확인 좀 하자."

 

 진단서가 있을 리가 있나! 타협을 모르는 성준수의 태도에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아니, 내가 정상이라고 카면 정상인 거지. 와 저러노! 이젠 제 손목을 잡아 끌어 당기기 시작한 성준수에 갑갑함을 이기지 못한 기상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 정상이라고요!!!!! 내가 햄만 보면 치과 의자 앉은 것처럼 심장이 벌렁벌렁 뛰어서 이러는 거라고요!!!!!!!"

 

 체육관이 떠나가라 질러댄 문장이 메아리로 흩어져 사라진 공간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어머니…. 아들래미 먼저 저세상 갈랍니다….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사인 중에 쪽팔려 뒤지는 것도 있으면 기상호 사인은 그거다. 절대 고백할 생각 없었는데! 죽어도 고백할 생각 없었는데! 성준수가 답지 않게 갑갑하게 굴어 충동적으로 고백하고야 말았다. 아니지, 잠깐? 방금 기상호가 한 말을 정말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까? 햄이 너무 무서워서 그런 거라고 수습하면? 사이는 어색해지겠지만 고백한 거는 아니게 된다. 고백해서 남남 되기 vs 어색한 선후배 사이로 성준수 장례식까지 참여하기. 말해 뭐해? 당근 후자지. 순식간에 밸런스 게임을 끝마친 기상호가 수습을 위해 입을 열기 전 성준수가 먼저 선수를 쳤다.

 

 "너… 그거 무슨 뜻이야."

 "아, 햄, 햄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요."

 "너 나 보면 심장 뛰어? 그따구로 심장 고장 난 것처럼? 너…, 너…."

 "아니, 햄아? 제 말 좀 들어,"

 "너 나 좋아하냐?"

 

 햄아…. 성탄이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좀 곤란한데요. 갑작스레 드라마 남주 빙의한 성준수 탓에 당황스러워 하려던 변명이 까맣게 잊혀졌다. 대체 이게 뭔 상황인지 당황스러워 죽겠는데 성준수는 저런 말이나 하고. 일단은 이 개망한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성준수를 바라보면, 어라? 어라….

 

 이상하다. 성준수 얼굴이 빨갛다. 아니, 아까도 빨갛긴 했는데 훈련 탓인 줄 알았다. 근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혹시, 설마, 진짜 만에 하나 기상호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그렇다면, 말해야지. 기상호는 기꺼이 도박판에 패를 던진다.

 

 "햄…. 저 햄만 보면 치과 의자에 앉은 것처럼 긴장되고 심장이 빨리 뛰어요. 새로 나는 이처럼 햄이 계속 낯설어요.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자꾸 이가 자라는 것처럼 이상해요."

 "…어."

 "저 햄을 좋아해요…. 햄 때문에 사랑니가 났어요. 책임져요…."

 "어. 책임질게."

 "평생요?"

 "평생."

 

 크흥…. 대체 언제부터 흘렀는지 모를 눈물로 푹 젖은 기상호의 뺨을 잡은 성준수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처음으로 뽑은 사랑니는 피 맛이었고, 처음으로 하는 키스의 맛은 짭짤했다. 뭐 하나 달콤한 게 없다니. 이 상황이 너무 웃겨 맞닿은 입술 사이로 푸흐흐 웃음이 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붙어있던 입술이 떨어지고, 성준수가 표정을 찌푸리며 볼을 부여잡았다. 그러더니 뭐가 그렇게도 웃긴지 푸시시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야, 기상호. 너도 나 책임져야겠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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