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2
세상에 나쁜 정대만은 없다

https://youtu.be/TEsMQQMlkBw?si=cvDvGpzoIti0fu0u

 

 

 

 

 

 송태섭은 성선설을 믿는다. 물론 환경에 따라 추후 어떤 인간이 될지는 예상 못해도 태어나기를 나쁘게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기를 나쁘게 타고났다고 하면 그건 좀 너무하잖아. 인간이 인간인 이유가 뭐겠는가. 교육이 가능하고, 그게 안 된다면 연기를 할 수 있는 생물이 인간이다. 물론 똑똑한 짐승들도 가능하겠지만. 아무튼, 태섭이 하고 싶은 말은 그거다.

세상에 나쁜 인간은 없다. 있어도 바꾸면 된다!

 

 

 

세상에 나쁜 정대만은 없다

 

 

 

 인생사 새옹지마.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바로 인생이고, 그래서 재밌는 거 아니겠어? 태섭은 그 말을 요새 절절히 실감하는 중이다. 원인은 하나다. 농구부 선배, 중학생 때의 눈치 없던 인간, 옥상에서 태섭을 턴 범인, 농구부 습격 사건의 주도자. 그리고 송태섭 남친. 그렇다. 태섭은 몇 달 전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그것도 정대만과. 대체 왜지? 송태섭은 왜 정대만이랑 사귀는 걸까? 좋으니까 사귀는 거지만 스스로도 이해 안 되기는 한다. 아무래도 농구부 습격 때 털린 이빨이 태섭의 정신 줄과 이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태섭의 상황에서 정대만과 사귀는 미친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 테니까.

 

 사랑은 존나 위대하다. 얼마나 위대하냐면 태섭보다 한참은 큰 시커먼 사내를 귀엽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연습이 끝나고 지쳐서 누운 태섭의 위로 드러누운 대만이 성가시기 보다는 거대한 대형견처럼 보였으니 말 다한 거 아닐까. 대만의 땀에 젖은 머리를 손으로 헤집으면서 태섭은 진짜로 내가 미쳤구나, 생각했다. 심지어 살짝 수줍어 하는 얼굴에 동하기까지 했다! 진심 나 미친 듯!

 

 그렇게 순조롭게 사랑에 미쳐가는 송태섭에게도 고민은 있었으니, 그 고민의 주체 또한 정대만이다. 정대만은 생각보다 연애를 잘 했다. 태섭의 변덕에도 순순히 맞춰주고, 좋아한다 사랑한다 너 귀엽다 같은 간지러운 말을 곧잘 했다. 사람이 타고나기를 좀 제멋대로인 부분이 있어서 몇 번 정도는 거하게 싸울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아마 두어번 정도 누군가와 사귄 경험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잠깐, 갑자기 열받네... 태섭은 오늘 집 가는 길에 대만의 뽀뽀를 거부하기로 결심한다. 괘씸죄다. 그래도 태섭과 연애를 한 뒤로는 품절남 티를 줄줄 내고 다녀서 단 하나의 틈도 주지 않는 철벽남이 되었다. 흠, 갑자기 귀엽네? 태섭은 오늘 집 가는 길에 대만에게 먼저 뽀뽀를 갈겨주기로 결정한다.

 

 아니, 이게 아닌데. 생각이 잠시 다른 곳으로 튀었다. 아무튼 태섭이 정대만으로 고민하는 이유가 뭐냐면, 이게 좀 염병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긴 한데... 정대만이,

 

 정대만이 송태섭을 좀 지나치게 사랑한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아무래도 송태섭도 정대만을 사랑해서 연애를 시작한 거라서 그랬다. 내 남친이 날 사랑하는 게 뭐가 문제라고, 오히려 좋아 상태였다. 세상이 좀 분홍빛 필터가 껴진 것처럼 보이던 시기였다. 태섭의 눈에 단단히 껴서 빠질 생각을 안 하는 콩깍지 때문에 정대만이 무슨 짓을 해도 몽땅 로맨틱한 행동으로 보였다. 그리고 송태섭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과거를 원망하는 중. 그때 정대만 기강을 단단히 잡아놨어야 하는데, 젠장. 연애 초기가 이렇게 무섭다.

 

 어라, 하고 이상한 걸 깨달은 건 사귀고 두 달 정도 지났을 때부터였다. 이 인간이 자기 바운더리 안에 있는 거에 한해서 어느 정도 소유욕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는 그래 우리가 좀 우여곡절 끝에 사귀기 시작했으니까 아직은 자제를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봐줬다. 시간이 좀 지나면 정대만도 안정을 되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니까. 근데 이게 웬걸? 당첨될 게 뻔한 로또에 배신당한 기분이 이런 걸까? 대만은 안정은커녕 점점 불안해했다. 누가 보면 송태섭이 정대만 돈 들고 튀기라도 할까 봐 내내 태섭을 감시하는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태섭에게 딱 붙어 있었다. 사실 거기까지도 태섭은 괜찮았다. 내 남친이 날 좋아해서 이러는 게 뭐 문제라고. 물론 정도가 지나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평생 저러지는 않을 거고 언젠가는 차차 나아지겠거니 했다. 그 사이에 설마 뭔 일이 나겠어?

 

 그런데 말입니다. 글쎄, 뭔 일이 나더랍니다. 하하.

 

 

 

 

 아마 훗날 북산고등학교 농구부에는 대대로 두 개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가지 않을까? 첫 번째 전설, 농구부 최후의 날. 두 번째 전설, 농구부 내꺼 사건. 놀랍게도 두 사건 다 송태섭과 정대만이 주요 인물이다. 와아, 영광. 태섭은 어쩌다 본인의 인생이 이렇게 파란만장해졌는지 짧은 생을 되짚어본다. 섬에서 태어난 탓에 인생이 바다를 닮았나. 삶이 내내 파도쳤다. 적어도 농구부 최후의 날 이후로는 조금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농구부 내꺼 사건. 이게 문제다. 이 망할 사건 때문에 송태섭은 본인의 연애 사정을 의도치 않게 다 까발리고 말았다. 정말, 아주 조금도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다 정대만이 문제였다. 아니, 나 진짜 왜 아직도 정대만이랑 사귀는 거지? 태섭은 다시 귀갓길 뽀뽀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대만이 반발하면 안 헤어지고 아직까지 사귀는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대답해야지.

 

 사건의 시작은 평범했다. 농구부는 아무래도 덩치 큰 남자들끼리 모여있는 집단이고, 주전들은 더 덩치가 큰 사람만 모인 가운데 태섭이 유독 작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말을 전달할 때는 상대방이 태섭에게 맞춰 몸을 숙여주거나 태섭이 멱살을 잡고 끌어내리고는 했는데 대만이 그걸 질투하기 시작했다. 야, 남자친구는 난데 왜 다른 애들이 너한테 맞춰줘? 진심 정신이 단단히 나간 발언이었다. 애초에 송태섭이 농구부에 들어와 유니폼을 받은 순간부터 내내 이랬는데 갑자기 질투라니. 백번 양보해서 질투? 할 수 있다. 태섭도 대만이 자기보다 작은 누군가에게 맞춰 몸을 숙여주기라도 하면 기분 나쁠 것 같으니까. 근데... 경기 때문에 작전 얘기할 때도 질투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이거 때문에 대만과 태섭은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다. 물론 정대만이 대화하다 말고 입술 움직이는 게 귀엽다며 뽀뽀를 갈겨서 바로 화해하긴 했다. 그러나 송태섭은 여기서 그냥 넘어갔으면 안 됐다. 그 질투는 그저 시작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야 한다.

 

 작은 싸움 이후 대만은 조금 자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따금 울컥하는 모습이 보이긴 했는데 전처럼 바로 입을 댓 발 내밀지는 않았다. 게다가 태섭이 귀갓길에 애교도 좀 부리면서 풀어줬다. 애초에 사귀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두다가 사귀자마자 평소와 똑같은 스킨쉽에도 질투하는 건 살짝 웃기기도 하고. 그래, 대만도 생각이 있다면 본인의 질투가 얼마나 갑작스러운지 깨달았겠지. 태섭은 그렇게 방심했고, 지금에 이르러 후회한다. 정대만은 그저 추진력을 얻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이 물로켓이야? 추진력을 얻기는 왜 얻냐고.

 

 당겨진 화살을 놓으면 쏴지기 마련이고, 방아쇠를 누른 총알도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추진력을 얻은 정대만도 똑같다. 사건 날짜, 대만과 태섭이 백일을 맞이한 날. 사건 시간, 농구부 연습이 끝난 후. 사건 장소, 북산고등학교 체육관. 사건 개요는 이렇다. 정대만과 송태섭이 사귀기 시작한 지 백일을 찍은 날, 평소처럼 연습을 끝내고 지쳐 드러누운 태섭의 허벅지를 대만이 베고 누웠다. 살짝 눈치가 보였지만 아무래도 기념일이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데 지나가던 강백호가 그런 둘을 보고 냅다 태섭의 반대쪽 허벅지를 베고 누워 버린 것이다. 섭섭이랑 대만군 사이가 좋네. 누가 덩치만 큰 어린애 아니랄까 봐. 끝이 늘어지는 말투에 태섭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원래도 대만과 태섭이 붙어있으면 사이를 파고들던 강백호라 별생각 없이 그대로 두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저리 비켜, 강백호."

 "응? 싫어."

 "나오라고."

 "싫다니까? 나도 베개 필요하다고. 대만군도 베고 있으면서."

 "나와!"

 "싫어!"

 "나와!!!"

 "싫다고! 대만군 왜 이래? 섭섭이, 대만군 왜 이러는지 알아?"

 

 알아도 말 못해, 미친! 아, 이거 큰일 났는데? 불안해진 태섭이 대만을 진정시키려는 찰나, 대만의 입이 먼저 벌어졌다. 추진력을 얻은 정대만이 그대로 쏘아진 것이다.

 

 "내 남친 허벅지를 강백호 네가 왜 베고 눕냐고, 어? 얘는, 얘는... 송태섭은 내꺼라고!!!!!!!!"

 

 내꺼라고!!!!!!!!

 내꺼라고!!!!!!!!

 내꺼라고!!!!!!!!

 

 넓은 체육관 안에 대만의 말이 메아리쳤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태섭과 대만에게로 모였다. 눈알 굴러가는 소리마저 들릴 것처럼 조용한 정적을 깬 건 강백호였다. 그... 어... 내가 미안, 대만군... 태섭은 강백호가 눈치라는 걸 보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탄해야 할지, 갑자기 정대만과의 연애가 까발려진 거에 눈물을 흘려야 할지 고민했다. 아니지, 걍 죽자. 나 스스로의 의지로... 근데 혼자 죽기엔 억울하니까 정대만이랑 같이 죽어야겠다. 하하, 사랑하는 사람이랑 동시에 죽다니 제법 로맨틱해. 사건 결말, 대만의 목을 조르려고 달려드는 송태섭을 말리기 위해 농구부원 전원이 달려들었다. 여름이었다.

 

 

 

 

 사랑이 달콤하다고 한 새끼는 어디 잡히기만 해봐라. 내가 앞니는 물론이고 어금니까지 털어주겠어. 태섭은 웬수 같은 대만의 얼굴을 떠올리고 벅차오르는 고함을 참기 위해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염병, 하필 또 베개! 앞으로 부원들 얼굴은 어떻게 보냐고. 어색하게 내일 보자며 인사하던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속이 쓰렸는데. 사람들이 또 착하기는 엄청 착해서 학기 초부터 소란을 일으킨 당사자 둘이, 그것도 남자 둘이서 사귄다는 충격적인 사실에도 응원한다는 말이나 남겼다. 성선설, 성선설, 위대한 성선설. 근데 정대만 그 인간은 뭐가 문제냐고. 아니지, 성선설. 그 인간이 나쁜 건 아니야. 그냥, 좀 자기 멋대로 굴고 연인을 맘대로 통제하려고 해서 그렇지.

 

 송태섭은 정대만과 헤어지고 싶은 게 아니다. 솔직히 그 지랄을 했으면 정이 떨어질 법도 한데 그게 아니라서 스스로도 기가 찼다. 그러고도 정대만을 사랑하는 내 인생이 전설이고 레전드다. 헤어지는 건 싫고, 그렇다면 어쩔까. 점점 길어지는 고민 틈으로 거실의 티브이 소리가 섞여 들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어요. 모두 환경이 문제인 거죠. 우린 그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태섭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래, 세상에 타고나기를 나쁜 사람은 없다. 정대만도 나쁜 건 아니었다. 아직 사랑하는 거에 미숙해서 그럴 뿐이다. 송태섭은 그걸 옆에서 알려줄 수 있다. 아니, 솔직히 태섭도 사랑에 미숙하지만 오히려 같이 맞춰나가면 되는 일 아닌가. 세상에 나쁜 정대만은 없다. 문제가 많은 남친? 사랑으로 고쳐주면 되지! 누가 들으면 똑같이 정신 나간 것들끼리 만났다는 소리를 들었을 테지만 다행히 태섭의 집에서 혼자 속으로 한 생각이었다. ...다행맞나?

 

 정대만 갱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게 있다. 바로 정대만의 문제가 무엇인가다. 

 

 문제행동 하나, 질투가 많다.

 문제행동 둘, 집착을 한다.

 문제행동 셋, 사랑을 자꾸 확인받고 싶어 한다.

 

 와, 대충만 생각했는데도 세 개나! 태섭은 조금 울고 싶어졌다. 더 세세히 따지면 답이 없을 것 같아서 세 가지만 노트에 쓴 태섭이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갱생하는 건 좋은데 어떻게? 송태섭이 아무리 어른스러워 봤자 고작 고등학교 이학년인 건 달라지지 않는다. 대만보다도 한 살 어린데 정답이 툭하고 나올 리가 없다. 그러다 사자성어 하나가 떠올랐다.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 그니까 니가 나라면 어떻게 할 건데 이 개새끼야, 라는 뜻이다. 거기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더한다면? 이거다! 송태섭은 정대만을 뜯어고칠 방법을 찾았다. 질투와 집착은 기본으로 깐 다음에 사랑도 계속 확인 받으면 된다. 송태섭이 정대만에게 역으로 말이다. 그러면 정대만의 죄를 스스로 깨우치겠지. 와, 나 천잰 듯? 태섭은 편해진 마음으로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그럼 당장 내일부터 시작해볼까나. 

 

 

 

 

 

 문제행동 하나, 질투가 많다.

 

 좋아. 가보자고. 태섭은 체육관에 들어서기 전,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송태섭도 질투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정대만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대만과 같은 수준으로 억지로 질투 해야 하는 걸 생각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피곤으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송태섭이 누구던가. 지지 않죠? 이겨내죠? 인생의 주제가가 난 괜찮아다. 정대만 정신 차릴 때까지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오래 가지도 않을 거다. 좋아, 오늘부터 난 질투의 화신이다. 마음의 준비 끝. 태섭이 체육관 문을 벌컥 열었다.

 

 조금은 어색하게 건네지는 인사에 최대한 평소처럼 대답한 태섭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대만의 얼굴을 찾았다. 없네. 평소라면 이미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을 텐데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어제 일이 좀 쪽팔리긴 했나 보지. 태섭도 나름 늦게 온 축이었는데 그것보다 늦다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은 인간이 이럴 때만 보통 사람이랑 똑같이 군다. 그게 더 얄미운 거 절대 모를 거야, 그 사람은.

 

 "대만 선배는 아직 안 왔어."

 "오우, 어... 응... 고마워."

 

 으악, 생각보다 부끄럽네! 이거. 사귄 걸 들킨 것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신경 써서 상대의 행방을 말해주는 게 더 기분이 이상하다. 뭐랄까, 커플이 된 기분? 커플이 맞기는 한데, 단어와 단어의 조합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서 더 기분이 그렇다. 싫은 건 아니고. 손바닥에 강아지풀을 문지르는 것처럼 묘하게 간지럽다. 

대만이 없는 탓에 두 명분의 간지러움을 혼자 감내한 태섭이 재빠르게 탈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왜 이런 날 늦게 오고 난리람. 평소에는 일 초라도 안 보이면 초조하다고 숫자 송을 부르는 주제에 하필 오늘 늦게 오는 이유가 뭔데. 태섭은 오늘은 진짜로 뽀뽀를 안 하기로 다짐했다. 괘씸죄 추가다.

 

 투덜투덜 거리면서 옷을 갈아입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양반은 못 되는지 정대만이다. 슬쩍 노려보니 시선을 피하는 게 뭔가 찔린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천천히 머리부터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어랍쇼, 월척이다. 손에 들고 있는 저 노란색 봉투. 누가 봐도 러브레터다. 아, 딱 걸렸죠. 대체 뭐에 질투를 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이렇게 손수 만들어주다니. 태섭이 감동.

 

 "그거, 뭐예요?"

 "뭐, 뭐!"

 "그거 노란색 봉투. 누구한테 받았어요?"

 "아니, 내 것 아니거든? 옷이나 갈아입어!"

 "뭐가 아니야. 지금 장난해요? 누구한테 받았냐고요. 왜? 남자친구한테는 말 못하는 거예요?"

 "그런 거 아니라고! 옷이나 빨리 갈아입으라니까?"

 "지금 옷이 대수야? 정대만 너 누구한테 편지 받았어. 빨리 대답해요. 안 그러면 나 의심해요?"

 "태섭아. 진짜 별거 아니라니까? 응?"

 "내놔."

 

 와, 송태섭 대박. 한다면 하는구나 너. 속으로 자화자찬을 한 태섭이 천천히 대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손을 뻗어 대만의 손에 들린 편지를 낚아채려 하는데 대만이 먼저 움직였다. 들고 있던 편지를 냅다 반으로 찢어버린 것이다. 아니, 보여주는 거 아니면 찢는 거야? 양자택일이 너무 극단적이라 깜짝 놀랐지만 있는 힘껏 센척한 태섭이 찢어진 편지라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여기까지는 해야 진짜 질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어. 안길 것처럼 가까워진 순간에 대만이 뻗어진 태섭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냅다 소리를 지른다.

 

 "보지 마! 이 편지 너한테 온 거라고! 전달해달라고 부탁받은 걸 걔 앞에서 찢어 버릴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가져온 건데 왜 하필 그걸 발견해서. 이건 버릴 거야. 알겠어? 오늘따라 왜... 어? 잠깐만."

 "예? 저한테 온 거라고요?"

 "와, 핫, 참내. 야, 송태섭."

 "아니, 대답을 해요. 나한테 온 거냐고."

 "너... 야씨, 너 지금 질투 한 거지. 어?"

 "뭐래. 아니거든요? 편지나 내놔요. 붙여서 읽게. 왜 남한테 온 편지를 맘대로 찢어서 버린다고 하는 거예요. 이 양아치야. 아, 전직 양아치 맞지."

 "야, 태섭아 너 진짜 존나 귀엽다. 질투 나면 질투 난다고 처음부터 얘기하지. 그럼 바로 알려줬을 텐데."

 "제 말 듣고는 있어요?"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글렀다. 눈알이 돌았다. 이미 대만이 쥔 편지는 다 구겨져서 회생 불가다. 읽지는 못하겠지만 내게 편지를 준 누군가, 고마워요. 맘속으로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대만이 태섭을 안은 팔에 조르듯이 힘을 주었다. 갈비뼈가 짓눌리는 느낌에 큰소리도 나오질 않는다. 놔달라고 주먹으로 등을 치려는데 다시 문이 벌컥 열렸다. 동시에 아까부터 무슨 말을 중얼거리던 대만이 큰소리로 외쳤다.

 

 "아! 송태섭 진짜 사랑해! 세상에서 네가 제일 귀여워!"

 "앗, 미안."

 

 누군가의 사과와 함께 문이 닫히고 다시 열렸다. 대만의 가슴에 안겨있는 탓에 누군지는 보이질 않지만 목소리로 판단하기에는 아마 준호 선배 같다. 

 

 "근데 얘들아 곧 있으면 연습 시작이거든. 되도록 빨리 나와줄래? 물론 나도 이해는 하지만... 일단은 연습이 먼저 아닐까?"

 

 부드러운 문장이 끝나고 문이 닫혔다. 아무래도 같은 삼학년에게 들킨 탓인지 대만은 조금 민망한 얼굴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태섭은, 태섭은...

 

 씨발... 정대만... 당신 망신살을 나한테까지 옮기면 어떡하냐고요. 태섭은 작게 절망했다.

 

 

 

 

 문제행동 둘, 집착을 한다.

 

 포기를 모르는 남자의 남자친구가 포기를 빨리하면 쓰나. 고작 첫 번째 시도가 실패했을 뿐이다.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인데 한 번으로 그만둘 수는 없다. 이젠 질투가 아니라 집착으로 노선을 변경하기로 한다. 근데 집착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섬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 근처에서 살면서 배우는 것은 하나다. 놓아주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물에 걸린 어린 고기를 바다로 돌려보내고, 주기적으로 떠나는 배를 붙잡지 않는 것. 그것이 섬과 바다가 알려주는 것이다. 때문에 태섭은 놓아주는 법은 알아도 그걸 쥐고 내내 들여다보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대충 정대만이 제게 하는 것처럼 뭘 하든 꼬치꼬치 캐물으면 되는 거 아닐까. 마침 이번 주말에 대만은 약속이 있다고 했다. 이거다.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보면 대만도 지겨워서 진저리를 치겠지. 그러면 작전 성공이다. 집착이 피곤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만들겠어. 송태섭, 아자아자 화이팅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태섭은 생각난 김에 바로 대만에게 문자를 날렸다.

 

- 선배. 토요일에 누구 만난다고 했었죠?

- 영걸이.

 

 앗, 하필 영걸 선배야? 이건... 집착하기도 좀 애매한 상대다. 태섭은 계획을 미룰지 잠깐 고민했다. 그래도 남자가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어른 말 따라서 손해 보는 거 하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저 말은 어른의 어른의 어른의 어른이 한 말일 테니까 나쁠 건 없을지도. 고민을 끝낸 태섭이 천천히 답장을 입력했다.

 

- 몇 시에 만나기로 했어요? 약속 장소는 어디? 둘이 만나서 뭐 할 거예요?

- 아직 시간이랑 장소는 안 정했는데. 그리고 둘만 만나는 거 아니고 애들 다 같이 만나기로 했어.

- 그래요? 시간이랑 장소 정해지면 알려줘요.

- 왜?

- 왜? 내가 선배 남친인데 그것도 못 물어봐요?

- 전화 가능?

 

 엉? 딱히 전화할 생각은 없었는데. 잠깐의 망설임도 용납 못하는지 성격 급한 정대만 태섭이 답장을 하기도 전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어차피 내일도 학교에서 만날 텐데 늦은 밤에 굳이 전화라니. 망설이는 사이에 전화가 끊겼다. 오, 다행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또 전화가 울렸다. 조금 귀찮아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냥 갑자기 기절한 것처럼 잠들었다고 하면 통하려나. 손안에서 진동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면 전화가 끊기고, 곧바로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태섭은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계속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가 도착했다.

 

- 전화 왜 안 받아? 너 지금 누구랑 같이 있냐?

- 야. 전화 받아.

- 태섭아 나 화난 거 아니다. 그니까 전화 받으라고.

- 너 지금 집 맞아?

- 야 송태섭

 

 우, 우와... 진짜 개무서워. 얼마 전에 본 공포영화 귀신보다 정대만의 문자 폭탄이 더 무섭다. 더 씹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태섭은 먼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륵,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대만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태섭, 너 어디야. 잔뜩 가라앉은 게 기분이 저기 지구 내핵까지 뚫고 내려간 것 같다.

 

 "저 집이요. 아니, 잠깐 씻으러 간 사이에 이게 뭔 일이야."

 "아아, 씻으러 간 거였어? 난 갑자기 연락을 안 받길래."

 "안 받을 수도 있지..."

 "왜 안 받아? 난 무조건 받을 건데."

 "필요 없거든요."

 "뭐, 아무튼... 태섭아. 이번 주에 나 영걸이 만나지 말고 너랑 놀까?"

 "응? 갑자기?"

 "왜? 문자 보니까 내가 영걸이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길래."

 

 내 무덤을 내가 판 걸까. 언제부터 이렇게 헌신적인 남친이었냐고 묻기엔 대만은 사귀자마자 이랬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니지만 태섭이 이번에 원한 건 이런 흐름이 아니다. 그리고 태섭은 대만이 본인의 친구들과 거리를 두는 걸 전혀 원치 않았다. 애인 생겼다고 친구들이랑 소홀해지는 거는 조금 꼴불견이잖아. 기실 애인은 헤어지면 끝이기도 하고.

 

 "아니에요. 만나도 돼요. 그냥 어디 가는지만 제때제때 알려줘요."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기분이 풀렸는지 대만의 목소리가 티 나게 부드러워졌다. 잘... 넘어간 건가. 조금 찜찜하긴 했으나 태섭은 애써 무시하고 목소리를 죽여 대만과 한참 통화했다.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한참 불타오르는 연인 사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은 태섭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돌아온 주말, 태섭은 노이로제 걸리기 직전이다. 대만에게서 문자가 스팸처럼 우르르 쏟아졌다.

 

- 나 지금 영걸이랑 애들 만났어.

- 밥 먹으러 간다. 역 앞에 중국집 알지? 오늘은 짬뽕 먹을 거야.

- 밥 다 먹었다. 영중이 놈이 문자 하는 애가 생겼다길래 얘기 들으러 카페 간다.

- 연애 상담 끝. 오락실 가서 게임 좀 하다가 헤어질 것 같다.

- 슬슬 헤어질 것 같은데 너희 집 앞으로 가도 될까?

- 답장이 없네... 일단 버스 탔다. 이십 분 뒤에 도착 예정. 너희 집 근처 농구 코트에서 기다릴게. 확인하면 나와. 너 올 때까지 기다릴 거니까.

 

 하아아아. 태섭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바닥을 확인했다. 혹시 꺼졌으면 어떡해. 다행히 바닥은 새로 생긴 흠집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일단은 답장을 해야겠지. 알겠어요. 토독토독 키패드를 눌러 답장을 보낸 태섭이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다. 분명 집착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이 쓸모 없어졌다. 태섭이 묻기도 전에 대만이 먼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보고하니 할 말이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자기 맘대로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아랫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꼬박꼬박 보고다. 싫은 건 아니지만. 아니, 이거 싫지 않아서 더 문제 아니야?

 

 대만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천천히 농구 코트를 향해 걸었다. 멀리서부터 농구공이 바닥에 튕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대만이겠지. 묘하게 싱숭생숭했던 기분이 서서히 괜찮아진다. 생각해보면, 뭐, 선배가 내가 좋아서 죽을 것처럼 구는 거 싫지 않아. 솔직히 좋아. 다만 정도껏 했으면 좋겠어. 그래, 이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거야. 그럼 선배도 어느 정도 자제하지 않을까. 좋았으.

 

 철창 너머로 여유롭게 3점 슛을 넣는 대만이 보였다. 항상 생각하지만 정말 깔끔한 폼이다. 멋져, 내 남친. 속으로 간지러운 생각을 하며 발을 빠르게 움직였다. 대만도 태섭을 발견하고 팔을 양옆으로 벌렸다. 밖에서 안기는 건 무리라니까. 괜히 벌린 팔을 툭 친 태섭의 손목을 붙잡은 대만이 그대로 코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깔끔한 무지 티에 청바지가 지나치게 잘 어울렸다.

 

 "오늘 재밌었어요?"

 "어. 근데 너 보고 싶어서 죽는 줄."

 "뭐래.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오락실도 가고. 잘 놀았더만."

 "문자 다 확인 했었네? 근데 왜 바로바로 답장 안 했어?"

 "그냥요."

 "그냥? 야, 너 오늘 집에만 있던 거 맞지?" 

 

 뭐야. 갑자기 눈깔이 왜 돌아가? 이 대화 흐름 중에 어디서 빡친 건데.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에 당황하는 태섭의 귀를 만지며 대만이 질문했다. 오늘 뭐 했어? 누구랑 뭐 했는지 다 말해. 사소한 거 하나하나 빼지 말고 전부 다. 태섭은 아침 기상부터 차근차근 서술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집착... 그거 진짜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본투비 미친놈만 할 수 있는 거야, 그거. 자연스럽게 애인을 미친놈 취급한 태섭은 그림자가 길어지다 못해 어둠에 사라질 때까지 대만의 끝없는 질문에 대답했다. 집에 귀가했을 때는 이미 목이 잔뜩 쉰 뒤였다.

 

 

 

 

 문제행동 셋, 사랑을 자꾸 확인받고 싶어 한다.

 

 솔직히 이미 삼세판 중에 두판을 졌다. 이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서 할 필요가 있는 거 맞나. 애초에 갱생된 것도 하나 없다. 오히려 농구부원들은 다 알고 있는 사이라서 그런지 체육관만 들어가면 고삐 풀린 것처럼 태섭에게 계속 달라붙어 있었다. 안 그래도 여름이라 불쾌 지수가 높은데 딱 들러붙어 있으니 짜증만 났다. 오죽하면 그 서태웅이 송태섭을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봤을까. 농구밖에 모르는 애한테도 너무해 보일 정도다. 괘씸해. 오늘은 진짜로 뽀뽀 안 할래. 지금까지 태섭이 내린 괘씸죄만 합쳐도 정대만은 이미 무기징역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걸 어떡해. 짜증 나고 귀찮아도 전혀 싫어지지를 않는다. 어릴 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었는데 그 욕구가 충족되는 기분이었다. 조만간 손! 하면 손도 줄듯. 곰곰이 생각해보면 딱히 성공적이지도 않은 갱생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요새 대만을 방치한 것 같다. 뽀뽀도 맨날 해주니 마니 해서 조금 섭섭해하는 기색이기도 했고. 흠, 오늘은 선배가 해달라는 거 너무 튕기지 말고 해줄까. 태섭은 치수와 매치하는 대만을 물끄러미 보다가 오늘만큼은 대만이 원하는 걸 해주기로 결단했다. 연애는 밀고 당기기니까. 이젠 당길 차례다.

 

 연습이 끝나자마자 뻗은 대만의 옆에 간 태섭이 포카리를 건넸다. 쪼그려 앉은 태섭을 바라보던 대만이 슬쩍 몸을 일으킨 다음 작게 입을 벌렸다. 아아. 응? 아아? 진심으로 그걸 원하는 게 맞냐는 눈빛으로 바라보니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진심 수치스러움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사귀는 사이지만 참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오늘은 대만이 원하는 거 다 해주기로 결정했으니까. 작게 한숨을 쉰 태섭이 들고 있던 포카리 주둥이를 대만의 입술 사이로 갖다 댔다. 잘 마시는 모습을 보니 조금 귀여운 것 같기도 하다.

 

 "섭섭이랑 대만군 생각보다 닭살이다."

 

 바로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란 태섭에 대만의 앞니에 포카리 입구가 덜컥 걸렸다. 아! 작은 비명에 태섭이 재빨리 이빨을 확인했다. 안 그래도 가짠데, 이거! 다행히 이빨은 멀쩡했다. 안심한 태섭이 백호의 한쪽 귀를 잡아당겼다. 너 인마, 갑자기 말 걸면 어떡해.

 

 "그치만 섭섭이랑 대만군이 먼저 알콩달콩했잖아."

 "알콩달콩은 무슨. 어르신 수발들어준 거야."

 "그런 거였어? 사랑의 아앙이 아니었단 말이야?"

 "아악! 누가 그런 걸 자기 입으로 말해요? 미쳤나 봐."

 "뭘 새삼스럽게? 나야 진즉 미쳤지."

 

 얼라리요. 갑자기 불안하다. 일단 저 주둥이를 막아야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고백과 뽀뽀를 모두 먼저 갈긴 주인공답게 대만이 더 빨랐다.

 

 "너한테 미쳤지. 나는!"

 "미친... 미친..."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저런 닭살 멘트 대체 어디서 배워오는 거야. 설마 영걸 선배? 그 선배 취향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다음에 만나면 그딴 멘트 작작 알려주라고 해야겠어. 태섭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대만은 자유투에 성공한 것처럼 하하하 웃었다. 와, 짜증 나. 생각이 표정에 다 드러났는지 대만이 미간 사이를 좁히며 말했다. 뭐야, 내 사랑에 불만 있어? 불만은 없지만 가끔 버겁긴 하네요. 대만이 알면 섭섭할 생각을 한 태섭이 손을 뻗어 대만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잡고 주욱 늘렸다. 이 주둥이가 문제야.

 

 "선배. 제발 장소 좀 가려요. 그런 말은 둘만 있을 때 하라고요. 네?"

 "으븝."

 "싫다고? 나도 선배 이러는 거 싫거든요? 민망하다고요."

 "이브엡."

 "귀엽다고 하면 단 줄 아나."

 "브빕."

 "웃지 마요. 짜증 나."

 "그... 섭섭이... 대만군 말을 어떻게 알아듣는 거야? 사랑의 힘?"

 

 백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태섭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슬쩍 대만을 보니 이미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으악, 으악, 으악, 으악. 민망함을 이기지 못한 태섭이 빠르게 탈의실로 도망쳤다. 그런 태섭의 뒤를 쫓으며 대만이 소리쳤다. 야, 송태섭! 너 진짜 나를 사랑하는 구나! 와하하학!

 

 남겨진 농구부원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 조금 이따가 들어갈까? 아무래도 그게 좋겠어요. 하하, 두 사람 사이가 좋아서 다행... 이야. 그러게요...

 

 

 

 

 

 

 갱생 프로젝트 결과 : 대실패

 

 문이 닫히기 무섭게 입술을 물렸다. 커다란 손이 태섭의 뒤통수를 잡은 탓에 도망갈 수도 없다. 입안을 가득 채운 탓에 잔뜩 벌어진 입이 조금씩 아파왔다.

 

 "흡, 흐.. 아, 천천, 천천히..."

 "너 숨 쉬는 거 진짜 서투르네."

 "불만, 있어요?"

 

 올라간 송태섭의 눈꼬리를 손가락 끝으로 내린 대만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앞으로 모조리 다 나한테 맞춰질 생각하면 죽을 것 같아. 평생 갈 네 기준을 만드는 게 나인 거잖아. 완전 내 것 같아. 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대만의 얼굴이 다시 가까워졌다. 당신, 이럴 때마다 진짜 무서워요. 차마 내뱉지 못 할 말을 타액과 함께 삼키며 태섭은 생각했다. 아무튼 이 갱생 프로젝트는 단단히 망했다고. 아마 앞으로도 평생 망할 것 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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