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사육의 기쁨과 슬픔




대만은 어릴 적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다. 어머니의 지인분이 키우던 강아지였는데 가족들이 해외로 아예 이민을 가게 되면서 대만의 가족이 키우게 된 것이다. 말티즈랑 스피츠가 섞였다는 강아지는 어린 대만이 안으면 얌전히 대만의 어깨에 턱을 올린 채로 안겨있었다. 이름은 중만이. 어째 영 구리지만 정대만이 정한 거라 부모님은 그렇게 하라며 웃었다. 내가 대니까, 넌 중이야. 이제 막 한자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애의 단순한 생각으로 정해진 이름이었다.

중만이의 원래 이름은 설기였다. 하얗고 털이 복슬복슬한 것이 바닥에 배를 붙이고 누우면 형태가 영 네모 같아서 백설기의 설기를 따왔다고 했다. 그런 예쁜 이름을 두고 중만이라고 불렸으니, 이제야 생각하지만 조금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중만이는 중만이라고 불렀을 때도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방정맞게 흔들면서 웃는 얼굴로 대만에게 달려왔지만 아주 작게 설기라고 부르는 날에는 정말… 미친 반응을 보여주었다. 설기야, 인간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말하면 왕왕 하고 짖으면서 평소보다 배는 빠르게 달려왔다. 그리곤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 반응이 재밌어 대만은 종종 중만이를 설기라고 불렀다. 어릴 때는 며칠에 한 번이었고, 더 나이를 먹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 더 지나서는 반년에 한두 번 부를까 말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가끔씩 부르면 그 이름을 잊을 법도 한데 중만이는 잊지 않고 설기라고 불릴 때마다 꼬박꼬박 크게 반응했다.

이유는 중만이가 강아지별로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이미 중만이를 데려올 때부터 그 아이는 네 살이었고, 그때 대만의 나이가 여섯이었다. 중만이는 대만의 초등학교 졸업식 다음날 눈을 감았다. 물론 그전부터 곧일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마음의 준비도 했다. 오래 살았다고, 마지막에는 꼭 웃는 얼굴로 보내주자고 다짐도 했다. 크게 아픈 곳도 없었다. 그냥, 이젠 가야 하는 때가 온 거였다. 다만 한가지, 대만이 없을 때 떠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대만은 학교에 갈 때마다 기운 없이 누워있는 중만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형 기다려야 돼? 알겠지? 놀랍게도 중만이는 매번 대만을 기다렸다. 기운이 없을 텐데도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릴 시간에 맞춰 문 앞에 깔아둔 매트 위에 누워 대만을 맞이했다. 그래서 대만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렇게 영영, 넌 나를 기다리지 않을까. 우리가 영원히 함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알고는 있었다. 이제 곧 보내줘야 한다는 걸. 하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만은 계속 기다리라고만 한 것이다. 그리고 대만이 기다리라는 말을 하지 않은 날, 중만이는 떠났다. 이젠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삶을 위해서.

아침 늦게 일어나 눈을 보자마자 알았다. 오늘이구나. 졸업식 다음날이라 들뜬 기분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부모님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다 같이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중만이 옆에 붙어있었다.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잘 가. 끝도 모르고 이어지는 말들에 중만이는 꼬리를 가끔 흔드는 걸로 대신 대답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대만은 저도 모르게 설기라는 이름을 불렀다. 설기야, 사랑해. 그 말에 중만이는, 설기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현관문을 한 번 바라본 뒤 제 손을 잡은 대만의 손을 한 번 핥고는 눈을 감았다. 이제 다시 눈뜨지 않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생명의 귀에 대만은 아주 오랫동안 속삭였다. 사랑해, 사랑해, 중만아, 영원히 널 기억할게….

사람들은 잃고 나서야 잃은 것들에 대해 알아보곤 한다. 대만도 마찬가지다. 중만이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강아지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었다. 내용들은 모조리 다 사랑의 증명이었다. 너도 나를 엄청 사랑했던 거야. 동시에 기다림의 증거였다. 주인을 잊지 못하는 강아지들…. 그래, 너 잊지 못했었구나. 널 아주 가끔 떠올릴 사람들을. 설기라고 부를 때마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행동들, 마지막에 현관문을 바라보던 시선. 책을 덮은 대만은 부은 눈을 비비며 생각했다.

강아지는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동시에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생물인 것 같다고.






사육의 기쁨과 슬픔







정대만이 송태섭과 연인이 된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연인이 되기까지도 족히 반년은 걸렸으니 체감으론 이미 일 년은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여름의 전국대회가 끝나고 정대만이 졸업하는 날까지 이어진 감정의 전쟁은 정말로 치열했다. 자각과 동시에 잠깐 부정했던 마음과 상대도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당혹감과 쾌감.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상대를 이리저리 재고 또 재기를 반복한 하루들. 어떻게 내가 너를, 어째서 네가 나를. 그리고 그것을 모두 무시하고 방어하는 송태섭. 정대만과 송태섭은 그야말로 전쟁을 했다. 따지자면 정대만이 송태섭의 요새를 침략하는 모양으로. 승자는 뭐, 정대만으로 해둘까? 결국 정대만이 먼저 침략 당한 것이지만 연상의 위엄이 있잖아.

짜증나요. 난 정말 선배를 붙잡아둘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고요. 정대만의 두 번째 단추를 손바닥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쥔 태섭은 대만을 원망했다. 눈물 한 방울 없이 건조한 눈동자인 주제에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흔들리는 목소리였다. 선배가 싫어요. 진짜 제멋대로야. 하나도 마음에 안 든다고요. 그런데 웃기지 않아? 정대만은 송태섭의 원망에서 또 사랑을 확신했다. 왜냐면 그렇게 싫다고 말하는 주제에 단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거든. 대만을 똑바로 응시하는 저 눈 속의 감정에 익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만은 그냥 안다고 대답했다. 알아. 그리고 말했다. 근데 너 말이야. 그렇게 제멋대로고 니 마음에 들지 않는 날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잖아. 날 붙잡지 마. 날 놓아줘도 괜찮아. 그냥 내 맘대로 네 곁에 머물다가 내가 질리면 떠날게. 이거면 되겠어? 사랑을 시작하기에는 쓰레기 같은 최악의 멘트였지만 송태섭은 잠깐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그거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그런 말을 했다.

아마 송태섭은 정대만을 금방이라도 날아갈 헬륨 풍선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건 송태섭이 정대만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나는 네가 놓는다고 날아가 버리는 그런 가벼운 존재가 아니야. 내 안에 담긴 건 헬륨 같은 가벼운 게 아니라, 너의 숨이라고. 이미 네가 불어넣은 숨으로 가득한 나는 지나치게 무거워져서 너의 발밑에 뒹굴고 있는데 말이지. 대만이 생각하기에 송태섭은 너무 앞만 보느라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당장 네 발밑을 확인할 여유조차 없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알려줄 수밖에. 송태섭이 앞만 본다면 정대만이 대신 뒤도 봐주고 옆도 봐주고 아래도 봐주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사랑은 원래 그런 거다.

정대만의 졸업 후 반년. 연인이 된 이후부터 정대만은 천천히 송태섭에게 자신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동시에 사랑 능력치가 영에 수렴하는 태섭을 레벨업 시키며 키우는 것과 비슷했다. 사랑을 하는 거에는 나름 익숙하고 할 줄 아는데 받는 법을 몰랐다. 스스로를 숨기는 것에 지나치게 능숙하고, 어쩌다 속내를 들키기라도 하면 금방 불안해하고, 정대만의 사랑을 내심 바라다가도 사랑한다는 말에는 도망쳐버리는 송태섭. 다행인 건 정대만이 포기를 모르는 남자라는 것이다. 숨기면 파헤치고, 불안해하면 달래주고, 도망치면 붙잡았다. 그걸 반년이나 하니 태섭도 천천히 대만의 사랑에 익숙해졌다. 사랑한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파드득 떨지 않았다. 무려 저번 주에는 대만의 사랑한다는 말에 용기를 내서 저도요, 라고 말했다. 원래는 네, 알아요, 이런 식으로만 대답하던 놈이 말이다.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지나치게 깜찍해서 하마터면 정대만은 송태섭을 치즈처럼 한입에 삼켜버릴 뻔했다. 크하학 웃으면서 얼굴 요기조기에 뽀뽀를 하는 정대만을 겨우 떼어낸 태섭은 징그럽다고 말하면서도 솔직하게 귀 끝을 붉게 물들인 상태였다. 하, 내가 여기까지 완성했단 말이지. 뿌듯했다. 그런데 마음 한켠엔 계속해서 남아있는 의문들이 있었다. 태섭이 대만의 사랑을 알게 된 뒤부터 가진 오랜 의문들.

송태섭이 사랑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뭐지.
네가 사랑을 무서워하게 만든 사람은 누굴까.
나를 바라보기 전에 먼저 생각했던 그 사람이, 대체 누구야?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를 관찰하게 된다. 이곳저곳을 탐색하던 시선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 그래서 대만은 태섭을 관찰했다. 왜냐면 궁금하니까. 더 알고 싶으니까. 쟤가 좋아하는 건 뭔지, 싫어하는 건 뭔지, 저 표정의 숨은 의미는 뭔지. 온통 물음표투성이였다. 정대만이 작성한 질문지에 정대만이 다시 답을 적어 넣으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태섭이 대만을 볼 때 종종 누군가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떠올릴 때의 감정은 좋다 싫다 보다는 그리움이었다. 누군가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을 때의 눈빛. 대만은 그 시선을 안다. 그 눈빛을 본적이 있었다. 과거, 소중한 무언가가 이따금 보인 눈과 비슷한 눈이었다. 문장이 하나 뇌리를 스쳤다. 강아지는 첫 번째 주인을 영영 잊지 못하고…. 그래서 태섭의 사랑을 눈치챘다. 너의 아주 소중한 사람을 내가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라면, 적어도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해줬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겠지. 그러면 보이는 것이다. 그리움 뒤에 숨은 아주 깊은 마음이.

그런데 하나 반전이 있었다. 그리움이라고만 생각한 감정의 뒷면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채기처럼 불시에 튀어나온 대만의 사랑을 알아챈 태섭이 한순간 겁에 질린 얼굴을 했으니까. 그 얼굴을 보자마자 처음으로 한 생각은 왜라는 의문이었다. 차라리 싫어 죽겠다거나 징그럽다는 반응을 했으면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었다. 분명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어째서? 사랑은 무서운 게 아니잖아. 애초에 너도 몇번이고 다른 사람에게 좋아해를 말했잖아. 정대만도 고백할 생각은 딱히 없었으나 그걸 보니 약간의 오기가 생겼다. 내 사랑은 왜 무서워 하는 건데? 그때부터는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공성전의 시작이었다. 벽을 높게 쌓은 송태섭과 그걸 무너뜨리려는 정대만. 송태섭이 진 이유는 하나다. 벽을 너무 높게 쌓아 올린 나머지 송태섭 자신의 시야마저 가려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무언가를 던지지 않는 정대만이 포기한 줄 알고 방심하고 있던 거다. 정대만이 그 높은 벽을 몇 번이나 떨어져 가면서 기어 오르는 줄도 모르고.

결국 하얀 깃발을 내건 송태섭을 정대만이 늦기 전에 냅다 날름 훔쳤지만 그래도 의문은 언제고 남아 있었다. 그때, 왜 넌 그런 얼굴을 했을까. 넌 왜 그 뒤로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도망갔을까. 정대만이 그동안 봐온 송태섭은 도망이나 겁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넌 널 겁먹게 만든 것들을 어떻게든 뚫고 결국엔 무너뜨리는 것 같은데 말이지. 송태섭의 회피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정대만의 고백도 결국엔 내 맘대로 네 곁에 머물다가 내 맘대로 떠나겠다는, 이기적이고 거지 같은 말을 하고서야 겨우 받아주지 않았나.

사귀고 나서도 사실 위기는 많았다. 툭하면 이제 그만두는 건 어떠냐고 말하지를 않나, 진짜 계속할 거냐며 진짜 자긴 괜찮다고 하지를 않나, 그거 사랑 아니고 호승심 아니냐며 의심하지를 않나. 그나마 정대만이 이미 경험해 본 것이라 다행이지. 대만은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렸다.

설기는 중만이라는 이름을 한 애정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툭하면 밥을 먹지 않았다. 그리곤 내내 바깥이 보이는 창문 앞에 엎드려 하염없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봤다. 가끔은 창밖을 보면서 몇 분이고 짖었다. 밖에 들릴 리도 없는데. 이건 그저 짐작이지만 예전 가족들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보면 그랬을 거다. 덧붙여 대만을 보면서도 이따금 이를 보였다. 일부러 사고를 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아마 다시 나를 혼자 둘 거면 지금 당장 하라는 어필이었을 거다.

사육이란 게 참 그렇다. 그 행동이야말로 사실 이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행위가 아닐까? 그렇잖아. 말도 못하는 짐승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맘대로 길들인다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길들인 짐승으로부터 한순간에 떠나버린다면? 더 이상 야생을 모르는 그 짐승은 길들여진 채로 남겨져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자신을 길들인 사람을 하염없이 영영 기다리면서.

사육은 인간에겐 기쁨이고, 짐승에겐 슬픔이다. 정대만은 그 사실을 무척이나 잘 안다. 중만이는 죽는 날까지도 설기라는 이름을 잊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대만이 설기라고 불렀을 때도, 제게 설기라는 이름을 붙여준 누군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대했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지극히 한정적인 기억으로 무한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 대만은 짐작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송태섭은 길들여진 것이다. 그리고 예상하건대, 태섭을 길들인 사람은 떠나버렸겠지. 어떤 예고 하나 없이, 순식간에. 그렇게 생각하면 송태섭의 모든 것이 이해가 가는 것이다. 왜 정대만의 사랑에 지레 겁을 먹었는지. 왜 정대만을 끝의 끝까지 거부했는지. 왜 정대만의 맘대로 떠나겠다는 말에야 겨우 수긍했는지. 다시 길들여지는 게 무서웠을 거다. 만약 길들여진 뒤에 내가 또 갑자기 사라질까 봐 두려웠겠지. 아마 지금도 어느 정도는 정대만이 당장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내 마음의 준비를 한 채로 있겠지. 내게 길들여질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내게서 버려질 준비만 하고 있다니. 무척이나 괘씸한 태도다. 게다가 송태섭은 대만의 허락도 없이 대만을 길들이지 않았나. 송태섭 너 날 사육한 주제에 그런 태도는 좀 아니지.

사랑과 사육은 무척이나 비슷하다. 사로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허락 없이 상대를 제 입맛대로 굴려 먹는 점이 아주 비슷하다. 송태섭 본인도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지난 일 년간 대만은 억지로 기다려를 배웠다. 간식도 주지 않는 이기적인 사육자에게 반항 하나 하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는데 포상은 지나치게 가끔 돌아왔다. 내가 헬륨 풍선인 줄 알고 네가 잡지도 않은 줄은 사실 내 목줄이었고, 네 숨으로 부푼 나는 네 발치에서 배를 까고 누워 귀여움이나 받으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그걸 넌 하나도 몰랐지. 아오, 이 이기적이고 바보 같고 괘씸하기 짝이 없는 나의 주인 놈아. 저가 대만을 길들인 것도 몰라 사육의 기쁨을 아예 모를 송태섭을 생각하면 순간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맘 같아선 아주 온몸을 깨물어 잇자국을 내고 싶었다. 만약 정대만이 진짜 개였으면 그렇게 했을 거다. 아니, 오히려 차라리 내가 정말 짐승이었다면 넌 나를 버릴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을 텐데.

난 너를 키웠어도 네 주인이 아니고, 넌 나를 키우고 나의 주인이 되었음에도 그걸 모르지. 정대만은 송태섭의 주인이었을 사람을 상상한다. 아마 나와 비슷했으려나. 그렇게 마지막까지 거부하고 아직도 날 온전한 네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걸 보면. 짐작하기엔 연상, 아마 농구를 했을 거고, 송태섭보다 키가 컸으려나? 그 사람과 대만이 비슷한 얼굴이거나 혹은 성격이 비슷하거나, 둘 중 하나. 내가 애정을 티 낼 때마다 겁을 먹었으니 널 무척 좋아한 사람이겠구나. 그 사람을 질투하는 건 아니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물론 맘에 드는 것도 전혀 아니다. 근데 이건 당연한 거 아니야?

강아지는 정말 미련하고 사랑스럽다. 귀찮다고 내쳐도 금방 제게 다가와 헥헥 거리며 작은 크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애정으로 주인을 바라본다. 그러다 주인이 어떤 이유에서든 사라져도 미워하지 않고 그리워만 한다. 바보같이. 주인이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더는 널 키우고 싶지 않아서(죽어), 너를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서(지랄), 널 더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싶어서(염병), 널 데리고 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나서(웃기지마 강아지도 비행기 탈 수 있어), 내가… 널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서. 별 등신 같은 핑계들과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모르니 대만이 원망할 자격도 없지만 맘에 들어 할 이유도 당연히 없다. 그리고 어쨌든 지금 송태섭 곁에 있는 건 정대만이다. 송태섭은 결국 언젠가 온전한 대만의 것이 될 것이다. 대만은 그걸 확신했다. 왜냐면 난 그런 걸 아주 잘해. 애정을 쏟아내고 결국 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걸 무척이나 잘한다고.

중만이는 같은 간식을 흔들어도 대만에게 제일 먼저 달려왔다. 산책을 가도 정대만과 가는 걸 제일 좋아했다. 잠을 잘 때도 툭하면 대만의 품을 파고들어 안겨 잠들었다. 당연한 거 아니겠어. 걔가 짖으면 난 옆에서 왜 그러냐고 말을 걸었고, 걔가 이를 보이면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품에 안아 진정시켰고, 걔가 사고를 치면 혼낼지언정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그래도 널 사랑한다고 말했으니까. 사람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짐승도 시선과 몸짓에 담긴 애정은 알아보기 마련이다. 중만이가 대만의 애정을 알아본 것처럼. 그러니 자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태섭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사육의 슬픔은 모조리 대만이 갖고, 기쁨은 모두 태섭에게 주면 된다. 기쁨을 줘도 송태섭은 아마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너도 나에게 길들여져 내 애정 속에 잠기는 걸 제일 편안하게 느낄 테니.

사실 이미 반 정도는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송태섭은 이제 정대만의 애정을 낯설게 느끼지 않는다. 당연하다고까지는 아니지만 하루아침에 사라질 신기루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오히려 얼마 전에는 이런 말을 했다.

"선배, 내가 없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대만이 없어지는 것보다 태섭이 사라지는 걸 걱정한다. 정대만이 송태섭을 두고 예고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아는 거지. 뿌듯함을 숨기고 대만은 대답했다.

"어떡하긴. 찾아야지."

그리고 다신 못 없어지게 만들 거야. 평생 내 옆에 묶어둬야지. 이어지는 말에 소름 끼친다고 대답하면서도 아주 조금은 좋아하면서 안심하는 것 같았다. 흠, 아예 이쪽으로 공략하는 것도? 내가 이런 것도 잘하기는 하거든. 일단 좀 더 생각해보는 걸로.

하루에 한 번씩 이제 질리지 않았어요? 라고 물어오는 질문도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아마 매번 대만이 전혀 아니라고 대답한 덕분이겠지. 언제 질릴 것 같냐는 말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죽을 때까지 안 질릴 것 같다고. 이건 진짜다. 저렇게 이따금 새로 드러나는 마음을 뜯어보는 재미와 대만에게 익숙해져 가는 모습을 볼 때면 느껴지는 쾌감을 동시에 가진 애가 또 있겠어? 있어도 송태섭 같은 애는 또 없다. 그리고 애초에 송태섭을 아예 사랑 안 하면 안 했지, 한번 시작한 이상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인생 조졌다고 볼 수 있지. 근데 괜찮다. 같이 조지면 되니까.

강아지의 삶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무척이나 길다. 백세시대라고들 하지 않나. 대만과 태섭이 할아버지가 될 때쯤엔 백이십세 시대가 올지도.

태섭을 첫 번째로 길들인 상대를 송태섭이 잊지 않아도 상관없다. 마지막이 정대만이면 되는 거 아니겠어? 게다가 정대만을 처음으로 길들인 사람이 송태섭이라는 사실만 알려줘도 걘 알아서 책임을 느낄 거다. 그걸 평생에 걸쳐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인간의 인생은 무척이나 길고, 이미 태섭에게 사육당한 대만은 태섭을 절대 놓지 않을 거니까. 그러니 너도 어서 깨닫도록 해. 송태섭 너의 연인은, 너의 정대만은 무척이나 미련하고 사랑스러운 생물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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